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이 2022년 10월 8일 사망했다. 심정지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노 교육감은 이날 점심 울산시 남구의 한 식당에서 모임을 하던 중 심장마비 증세가 온 것으로 알려졌답니다.
노 교육감은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심폐소생술(CPR)을 받았으나 오후 1시 30분쯤 사망 판정을 받았다.
이날 점심 식사 자리는 울산지역 공공기관장 정례 모임이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편 울산시교육청은 갑작스러운 노 교육감의 사망 소식에 비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교육청은 오후 2시부터 비상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 중이다.
- 노옥희 교육감의 프로필 경력 이력 가족관계
출생 나이 생일
1958년 5월 15일
고향 출생지
경상남도 김해군
사망일
2022년 12월 8일 (향년 64세)
재임기간
제8·9대 울산광역시교육감
2018년 7월 1일 ~ 2022년 12월 8일
가족관계
배우자 천창수, 1남 1녀
학력
한림초등학교 (졸업)
한림중학교 (졸업)
데레사여자고등학교 (졸업)
부산대학교 (수학 / 학사)
소속 정당
무소속
성향
진보
경력 이력
현대공업고등학교 교사
명덕여자중학교 교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울산지부 지부장
고교평준화실현 시민연대회의 공동의장
울산광역시교육위원
울산인권운동연대 이사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민생특별위원회 위원장
울산교육연구소 자문위원
진보신당 울산시당 위원장
노동인권센터 대표
울산부모교육협동조합 이사장
제8·9대 울산광역시교육감
- 노옥희 교육감의 일대기
노옥희는 1957년 김해 한림면 면 소재지에서 4킬로미터 떨어진 모정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위로 오빠 셋과 언니가 있고, 아래로 여동생 하나가 있다. 아버지는 정미소를 하셨다. 집에는 늘 쌀을 사려는 쌀장사들과 방아를 찧기 위한 사람들로 붐볐다. 아버지는 학교 교육을 많이 받지는 않았지만 기계를 고치는 기술이 뛰어나 동네에서 기계가 고장 나면 찾아와 모셔 갈 정도였다. 아버지는 경운기로 논이나 밭을 갈아 준 뒤 삯을 받기도 하고, 나락을 사들여 도정해서 쌀도 팔고, 닭을 키우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했답니다.
노옥희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금곡초등학교를 다녔다. 어릴 때는 몹시 말라 있었다. 모두들 가난한 시절이었다. 겨울이면 손에 때가 새까맣게 끼고 트고 갈라져 피가 나기도 했다. 몸이나 머리에서 이가 기어 나오기도 했다. 겨울이면 호롱불 아래 둘러앉아 내의를 벗어서 이를 잡기도 했다. 양말이 떨어지면 전구를 발꿈치 부분에 넣어 기워서 신었다. 추석이나 설이 되면 부모님이 새 옷이나 신발을 사 주었기 때문에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답니다.
중학교는 집에서 4킬로미터 떨어진 한림중학교에 다녔다. 날마다 왕복 2시간가량을 걸어야 했다. 체구도 작고 빼빼 마른 데다가 얼굴까지 새까매 늘 어디가 아프냐는 소리를 들었다. 통지표에는 '종합 진단 요망'이라는 의견이 쓰여 있기도 했습니다.
노옥희는 공부를 잘했다. 하지만 몸이 약해 체육을 잘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입시 때가 돼 부산여고에 원서를 넣었지만 떨어졌다. 체육을 못해도 입시에 떨어진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충격이 컸다. 첫 실패를 경험했다. 중학교 때까지 지니고 있었던 우월감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노옥희는 후기인 데레사여고에 입학했다.
그 학교는 천주교 재단의 학교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잘사는 친구들이 많아 처음에는 열등감이 생겼지만 곧바로 적응했다. 성적도 많이 좋아졌다. 키도 한 해에 10센티미터씩 자라 키가 큰 친구들과 어울렸다. 어떤 이들은 노옥희와 친구들을 보고 농구 선수들이 합숙하다 나왔냐고 묻기도 했다.
데레사여고를 졸업하고 대학은 무난히 들어갔다. 부산대학교 수학과에 진학했다. 집안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6남매가 모두 학교에 다니니 살림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노옥희는 부모님의 고생을 덜고자 과외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대학 1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결혼한 큰언니가 친정을 오가며 살림을 챙겼으니 어려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대학 생활은 평범했다. 박정희 말기였지만 시대 상황을 잘 몰랐다. 노옥희는 문리대로 진학해 교직 과목을 이수해 교사가 됐다. 거창한 꿈이나 기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부모에게 더는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교사가 되고자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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